공유지의 비극, '나 하나쯤이야'가 만드는 경제 재앙 (2026 국민연금 사례)

학원 출근길에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가는데, 거울 옆 선반에 누가 두고 간 종이컵이랑 영수증이 어제도 오늘도 그대로 쌓여 있더라고요. "누군가 치우겠지" 하는 생각이 백 명 모이면 그 자리가 쓰레기장이 됩니다.

 

수학을 오래 가르치다 보면 이런 일이 그냥 매너 문제가 아니라는 게 보여요. 아주 깔끔한 '수학 함정'이거든요. 오늘은 경제학 고전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제가 매일 칠판에 그리는 유리함수 그래프로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2026년 올해 한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연금 이슈까지 같은 그래프 안에서 설명돼요. 시작할게요.

1. 공유지의 비극이란? 착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재앙

공유지의 비극은 1968년 생물학자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이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유명해진 개념입니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해요.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공동 자원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 몫을 더 챙기려다 결국 고갈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

이 공유지의 비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악당이 아니에요. 다들 자기 입장에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어요. 그런데 그 합리적인 선택을 동시에 전부 하는 순간 공동체 전체가 마이너스가 됩니다.

 

수학 시험으로 치면, 반 학생 서른 명이 각자 자기 문제는 다 맞혔는데 학급 평균은 0점이 나오는 상황이죠.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다음 장에서 그래프로 딱 보여드릴게요.


2. 유리함수 y=C/n으로 이해하는 '책임의 점근선'

제가 수업 때 가장 많이 그리는 그래프 중 하나가  유리함수 y=k/x 예요. 공유지의 비극이 이 그래프랑 모양이 똑같습니다.

 

① 농민의 머릿속 계산식

공유지에 소를 한 마리 더 풀어놓는 마을 농민의 머리를 들여다볼게요.

 

$이득(Benefit) = +1$(소 한 마리 더 키워서 버는 돈은 전부 내 것)

$손해(Cost) = \frac{C}{n}$ (풀밭이 황폐해지는 전체 손실 를 마을 사람 명이 나눔)

 

머릿속에 숫자로 한번 넣어볼게요. 소 한 마리가 더 들어와서 풀밭에 생기는 전체 손해를  이라고 칩시다. 마을에 사람이 10명이면 내 몫 손해는 1/10이에요. 100명이면 0.01, 1만 명이면 0.0001로 쭉 줄어듭니다.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내 몫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반면 내가 버는 이득 은 마을에 몇 명이 살든 그대로 이고요.

 

② 분모가 만드는 착시

자, 분모를 다시 봐 주세요. 이 커질수록 $\frac{C}{n}$  은 어떻게 되나요? 점점 작아져서 0에 가까워지죠. 그런데 0은 아니에요. 이게 바로 점근선입니다. 유리함수 그래프가 축에 딱 달라붙긴 하지만 절대 닿진 않잖아요. 그 모양이에요.

 

사람들이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고 느끼는 그 감각이 정확히 이 점근선 근처입니다. 책임은 0에 한없이 가깝지만 진짜 0은 아닌데, 우리 뇌는 0에 가까우면 그냥 0으로 취급해 버리거든요. 이득 은 또렷한데 손해 0.0001은 거의 안 느껴지니까, 결론은 언제나 "소 한 마리 더 넣자"가 됩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이 똑같은 계산을 끝낸 순간, 공유지는 수천 마리 소로 뒤덮여 풀 한 포기 없는 땅이 돼요. 수학적으로 보면 이 식엔 결정적인 한 놈이 빠져 있습니다. 바로 '책임의 상수(Constant)' 예요. 분모 은 계속 커지는데, 이 자원을 지켜야 할 책임이라는 상숫값이  이면 함수 전체가 그냥 무너져요. 분모 뒤에 숨은 책임, 이게 공유지의 비극을 움직이는 진짜 엔진입니다.


3. 탕비실부터 국민연금까지, 2026년 한국의 공유지 비극

이 나쁜 방정식은 옛날 양치기 얘기만이 아니에요. 올해 여러분 일상에도 그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① 회사 탕비실과 공용 냉장고

공용 간식 보이면 "공짜니까 일단 챙기자"는 이득 이 "간식 좀 떨어져서 불편한 정도"라는 손해 1/n 보다 훨씬 커 보여요. 결과는 뭐, 다들 아시죠. 유통기한 지난 정체불명의 반찬통만 남은 냉장고입니다.

 

② 제주도·북촌의 오버투어리즘

생각해 보세요. 제주도 한 번 다녀오면 내 인스타에 풍경 사진도 남고 스트레스도 풀려요. 나한테는 분명한 이죠. 근데 그동안 그 동네에 쌓인 쓰레기, 시끄러워진 골목, 올라간 집값은 누가 감당할까요? 거기 사는 명의 주민이 전부 나눠 가집니다.

 

최근 북촌 한옥마을이 야간 관광객 출입 시간을 제한한 것도 이 구조 때문이에요. 이득은 관광객이, 비용은 명의 주민이 나눠 가지는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③ 2026년 가장 뜨거운 공유지: 국민연금

올해 한국에서 가장 큰 공유지의 비극 사례는 단연 국민연금입니다. 2026년 1월 1일부터 18년 만의 연금개혁이 시행됐어요. 핵심만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보험료율: 9% → 2033년까지 매년 0.5%p씩 올라 13%
  • 소득대체율: 40% → 43%
  • 기금 고갈 예상 시점: 2056년 → 2071년으로 15년 연장

왜 이게 공유지의 비극이냐면요. "내가 조금 덜 내고 조금 빨리 받으면 나한텐 이득"이라는 개인의 편익 은 또렷하게 손에 잡혀요.

 

반면 "기금 고갈이라는 전체 손해 를 가입자 수천만 명이 나눠 진다"는 실제 내 부담 $\frac{C}{n}$ 은, 분모 n이 너무 커서 점근선처럼 0에 달라붙습니다. 앞에서 본 소 한 마리 논리랑 수식이 똑같죠. 모든 세대가 "나는 이득"이라는 쪽으로 기울면 제도는 무너져요.

 

게다가 2025년 들어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있었어요. 국민연금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장주에 투자한 게 초 대박이 나서, 국내 주식 평가액이 1년 만에 3배 가까이 불어났거든요. 이 수익률대로라면 고갈 시점이 2071년보다 한참 더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그럼 분모 문제 다 해결된 거냐. 수학 선생님 입장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요. 투자 수익은 분자를 키워서 잠깐 $\frac{C}{n}$ 의 부담을 늦추는 거지,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다"는 구조식 자체는 그대로거든요. 시장은 언젠가 꺾이는데, 그때 다시 같은 방정식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4.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세 가지 풀이법

그럼 이 망가진 식을 어떻게 고칠까요? 경제학자들도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로 머리 싸맸어요. 풀이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사유화 – 분모를 1로 만들기

가장 고전적인 방법. 공동 땅에 울타리 치고 개인에게 소유권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 손해를 혼자 다 떠안아야 하니까 분모가 에서 1로 바뀝니다. $\frac{C}{1}$=C . 현실에서 소 한 마리가 풀밭에 주는 전체 피해 는 내가 버는 이득 +1보다 훨씬 커요. 그러니까 이득 +1보다 손해 가 크다는 게 곧바로 느껴지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소를 안 늘립니다.

② 정부 규제와 세금 – 변수를 억지로 추가하기

땅이야 쪼개지만 바다랑 대기는 못 쪼개죠. 이럴 땐 국가가 개인 계산식에 '세금'이라는 마이너스 변수를 강제로 꽂아 넣습니다. 탄소세, 혼잡통행료, 그리고 이번 연금 보험료율 인상도 큰 틀에선 같은 원리예요.

③ 엘리너 오스트롬의 제3의 길 – '신뢰'라는 상수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교수는 아예 다른 답안지를 냈어요. 정부 강제도, 사유화도 아닌 공동체 자율 규약만으로 공유지를 수백 년 지켜온 사례가 세계 곳곳에 있다는 걸 실제로 증명한 거예요.

 

"우리 마을은 소 두 마리까지만 키우고, 어기면 한 달간 청소 당번" 같은 구체적인 규칙 말이에요. 수학으로 옮기면 비어 있던 자리에 '공동체의 신뢰'라는 단단한 상수를 대입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얘기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은 내 이득을 분자로, 공동의 책임을 무한대의 분모로 나눌 때 터지는 수학 재앙이다.

 

분수에서 분모가 0이 되면 그 식은 정의 자체가 안 되고 무너져요. 반대로 분모가 너무 커져서 값이 점근선처럼 0에 달라붙으면, 우리 뇌는 그 책임을 '없는 셈' 치고 행동해 버립니다.

 

탕비실 간식도, 제주도 골목도, 국민연금도, 지구 대기도 전부 같은 그래프 위에 있어요. 문제는 각각이 아니라 방정식 자체가 똑같다는 점이죠. 앞에서 봤듯이 분모 이 아무리 커져도 식이 성립하려면 꼭 필요한 게 하나 있어요. 바로 '책임'이라는 상수(Constant) 예요.

 

오늘 여러분이 무심코 지나친 '공유의 무언가'에서, 여러분은 자기 몫의 책임을 상수(Constant)로 단단히 남겨 두었나요, 아니면 이라는 무한대의 분모 뒤로 슬쩍 숨어버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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