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적 실업, 실업인데 나쁜 게 아니라고?

우리는 보통 실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합니다. 뉴스에서 실업률이 올랐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경제 위기가 닥칠 것 같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암울한 뒷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수학에서 복잡한 방정식을 풀 때 잠시 멈추고 공식을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경제학의 세계에서도 모든 실업이 경제의 병든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에서는 실업을 발생하는 원인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뉴스 헤드라인 이면의 진실을 읽는 눈이 생깁니다.

  • 경기적 실업(Cyclical Unemployment): 경제 불황으로 소비가 줄고 기업이 문을 닫으면서 생기는 진짜 아픈 실업입니다.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입니다.
  • 구조적 실업(Structural Unemployment): AI 기술의 도입처럼 산업 트렌드가 급격히 바뀌어 기존 기술이 외면받을 때 생기는 체질 변화형 실업입니다. 노동자가 가진 기술과 기업이 원하는 기술이 어긋나는 상태입니다.
  • 마찰적 실업(Frictional Unemployment):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잠시 멈춰 서 있는 상태인 건강한 실업입니다. 노동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깊게 파헤쳐 볼 주인공은 바로 이 마찰적 실업입니다.

1. 마찰적 실업이란 무엇인가: 탐색의 시간

마찰적 실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실업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붙습니다. 첫째, 구직자에게 일할 의사와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 둘째, 시장에 그 사람을 원하는 일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실업 상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바로 딱 맞는 짝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탐색 비용이라고 부릅니다.

 

수학쌤의 시선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동네 뒷산 정상에 서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저 멀리 훨씬 높고 멋진 에베레스트산이 보입니다. 그곳으로 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서 있는 뒷산에서 일단 내려와야 합니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여러분의 고도는 잠시 낮아지겠지만, 이는 더 높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마찰적 실업은 바로 이 '산에서 내려와 골짜기를 지나는 시간'과 같습니다.


2. 마찰(Friction)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

우리가 물리 시간에 배운 마찰력을 떠올려 보세요. 두 물체가 매끄럽게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저항이죠. 노동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직자는 나의 가치를 알아줄 회사를 찾고, 기업은 팀에 꼭 필요한 인재를 찾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자리 정보가 한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구인 사이트를 뒤지고,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여러 번의 면접을 거치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매칭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시차와 저항이 바로 마찰이며, 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실업이 마찰적 실업인 것입니다.

 

마치 이사할 때, 살던 집을 비우고 새집으로 들어가는 날짜가 딱 맞지 않아 며칠간 호텔에 머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며칠 동안 우리는 통계상 집 없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주거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인율과 실업률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베버리지 곡선 글을 참고하세요

베버리지 곡선 개념부터 시장 신호, 실전 투자 활용법까지


3. 우리 주변의 마찰적 실업 사례

마찰적 실업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대개 본인의 의지에 의한 자발적 실업의 형태를 띱니다.

 

첫째,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이직자입니다. 5년 동안 한 회사에서 헌신했던 직장인이 더 큰 연봉과 좋은 복지를 위해 사표를 던졌다면, 그가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의 3개월은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둘째,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취업 준비생입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기 위해 여러 공고를 비교 분석하는 공백기는 경제가 나빠서가 아니라, 인적 자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기 위한 탐색의 시간입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수학 강사로만 일하다가 이코노필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처음엔 망설임이 컸습니다. 수업 준비 외의 시간을 블로그에 쏟는 게 맞는 방향인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그 고민의 시간 자체가 저만의 마찰적 탐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딸아이를 보면서도 이 과정을 실감합니다. 목표로 하는 대학과 현재 성적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전략을 짜는 모습이, 구직자가 자신의 스펙을 시장의 요구에 맞춰가는 과정과 매우 닮아 있거든요.


4. AI 시대의 혼란: 구조적일까, 마찰적일까

최근 AI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조적 실업과 마찰적 실업의 미묘한 경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전공자가 대학에서 배운 기술만 고집하고 시장이 원하는 AI 활용 능력을 갖추지 못해 도태된다면 이는 구조적 실업에 해당합니다. 산업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를 읽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 등을 추가로 공부하며 자신에게 맞는 하이테크 기업을 신중히 고르고 있다면, 그 공부 기간은 더 나은 매칭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므로 마찰적 실업의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5. 실업률 0%가 위험한 이유: 자연실업률

많은 분이 실업률은 낮을수록 좋은 것이라 생각하시겠지만,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실업률이 0%인 경제는 오히려 위험하고 정체된 경제일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마찰적 실업과 구조적 실업을 합친 수준을 자연실업률이라고 부르며, 보통 4~5% 정도의 실업자가 존재하는 상태를 오히려 완전고용이라고 정의합니다.

 

아무도 직장을 옮기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경제는 성장 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듯, 마찰적 실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노동 시장의 이동이 활발하고 경제가 역동적으로 숨 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처음 글을 올리기까지, 저도 잠시 골짜기를 걷는 기분이었어요. 수학 강사라는 뒷산에서 내려와 경제 블로거라는 새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그 탐색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골짜기를 걷고 있다면,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이동입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다음 정상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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